킥보드·공공자전거 '헬멧 딜레마'
2021.05.22 13:44
킥보드·공공자전거 '헬멧 딜레마'
5월 17일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 점심시간을 맞아 인근에 밀집한 사무실 건물에서 몰려나온 사람들이 보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행인들 사이로 안전모(헬멧)를 쓰지 않은 전동 킥보드 이용자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5월 13일부터 개인형 이동장치를 이용할 때는 안전모를 반드시 쓰도록 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경찰 단속과 계도를 피해 법규를 위반하는 모습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법 시행 이후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률은 뚝 떨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유 전동 킥보드를 대여하는 A업체 관계자는 “13일 이후 약 일주일간 데이터를 보면 권역에 따라 다르지만, 매출 감소폭이 큰 곳은 이용률이 절반가량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찰이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한달 동안은 범칙금을 부과하는 대신 법규를 준수하도록 계도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즉각 개인형 이동장치 사용을 줄이는 쪽으로 반응한 것이다. 계도기간이 지나면 헬멧을 쓰지 않을 경우 2만원, 보도 주행 시 3만원, 동승자와 함께 타면 5만원, 무면허 운전 시 10만원에 달하는 범칙금을 부과받는다. 또 개인형 이동장치는 보도에서 달릴 수 없고 자전거 전용도로로 달리거나 차도의 가장 오른쪽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
규제 강화 이후 킥보드 이용률 하락
대부분의 전동 킥보드 업체가 킥보드만 대여할 뿐 헬멧을 제공하는 방안을 찾지 못한 탓에 이용자는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려면 자신이 직접 헬멧을 구비해야 한다. 거리에서 만난 공유 킥보드 이용자 이모씨는 “오늘은 가까운 거리만 이동하느라 설마 걸릴까 하는 생각에 헬멧 없이 킥보드를 탔지만, 매번 헬멧을 들고 다니기도 어려우니 앞으로 이용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단속 첫날인 5월 13일 경찰이 집계한 단속 결과를 봐도 헬멧 미착용이나 보도 주행 등의 위반사항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찰은 이날 홍대입구역을 비롯해 여의도, 한강공원 등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가 몰리는 지점을 중심으로 단속 및 계도활동을 벌인 결과 1시간 30분 동안 한 지점에서만 총 78건의 규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공유 킥보드 일일 평균 이용시간은 10분 안팎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범칙금 부과를 염려하는 이용자들이 헬멧을 휴대하고 다니기보다는 이용을 자제할 공산이 더 크기 때문에 업체로선 어떻게 헬멧 착용을 유도할지가 생존을 위한 관건이 된 셈이다.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자 본인의 안전을 위해선 스스로 헬멧을 착용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방향이 가장 합리적이다. 지난 3월 2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던 한 60대 이용자가 사거리를 지나다 자동차와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117건이었던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는 지난해 897건으로 해마다 곱절씩 늘어나는 급증세를 보였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의 수도 같은 기간 128명에서 995명으로 역시 크게 늘었다. 전동 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연령이 만 13세 이상부터 허용됐다가 이번 법 개정으로 다시 원동기장치면허 이상의 면허 보유자로 제한된 것도 급증하는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도입된 조치다.
이미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들이 크게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헬멧까지 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안전문화 확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형 이동장치 도입 대수는 2017년 9만8000대, 2018년 16만7000대, 2019년 19만6000대로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다만 업체로서는 헬멧을 함께 대여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고 토로한다. 한 킥보드 업체가 지난해 대구에서 300개의 헬멧을 시범 비치했지만 200여개가 분실되고 50개가량은 재사용이 어려울 정도로 파손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 ‘따릉이’ 역시 2018년 과거 30곳의 대여소에서 헬멧 1500개를 비치해 두고 이용자들이 착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시도했지만, 이용률이 3%대에 그쳤다. B 공유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지금이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방역조치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라 막상 헬멧을 대여해도 이용자들이 착용을 꺼리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고 말했다.
헬멧 구비해도 이용할지 의문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동 킥보드 1대마다 모두 헬멧을 걸어두고 한꺼번에 대여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나왔다. 앱을 통해 이용 후엔 헬멧을 잠글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 방식은 현재로서는 업체들이 분실이나 파손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헬멧을 제공하는 가장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고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또 다른 대안은 공유 킥보드를 보도 위에 무질서하게 방치하는 문제와 함께 엮어 해결할 수 있도록 업계가 공동으로 지정된 대여소를 마련하고 이곳에 대여헬멧도 함께 비치하는 방안이다. 일부 지자체가 업계와 함께 공동 대여지점을 시범 도입한 예는 이미 있었다.
무엇보다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취지가 이용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만큼 보다 진전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도로교통법이 개인형 이동장치의 운행속도를 시속 25㎞ 이하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속도제한을 10㎞대로 낮추자는 의견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현행 제한속도를 더 낮추는 대신 보도 운행을 일부 허가하고 대신 헬멧 착용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지적에는 이용행태로 봤을 때는 대동소이한 자전거 역시 헬멧 착용 의무화가 유명무실했다는 경험도 반영됐다. 자전거 역시 법규상으로는 별도로 지정된 보도 통행구간을 제외하면 차도로 운행해야 하고 이용 시 헬멧을 써야 한다. 일반적인 보도에선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자전거 동호인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거꾸로 헬멧을 착용한 비율이 더 높은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주변 사람이 쓰면 자신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행동경제학자인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대 교수가 쓴 〈행동의 전염〉에는 저자가 프랑스에 방문했을 당시 동료 연구자가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는 게 유행에 맞지 않아서 더 쓰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안전문화가 기본적으로 규제보다는 시민의식의 확산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프랭크 교수의 다음 지적도 참고할 만하다. “가장 직접적인 구제책은 헬멧을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 헬멧 없이 자전거 타는 일을 덜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방향이 돼야 한다.”
-출처 경향신문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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